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고 배우자가 단순승인 또는 한정승인하는 경우,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될 뿐 손자녀는 공동상속인이 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앞서 자녀들이 전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와 손자녀가 공동으로 상속인이 된다고
판단한 2015년 5월 대법원 판결을 약 8년 만에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3일 사망한 A 씨의 손자녀 4명이 낸
승계집행문 부여 이의 신청 사건(2020그42)에서 이의신청을 기각한 원심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민법 제1043조는 공동상속인 중에 어느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한 경우
그 사람의 상속분이 '다른 상속인'에게 귀속된다고 정하고 있다"며 "이 때 '다른 상속인'에는 배우자도 포함되고,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들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상속분은 배우자에게 귀속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반면 배우자와 자녀 모두가 상속을 포기하면 그때는 민법 제1043조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속포기의 소급효를 규정한 민법 제1042조에 따라 후순위 상속인으로서 피상속인의 손자녀가 상속인이 된다"며
"손자녀 이하 직계비속이 없다면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이 상속인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속을 포기한 피상속인 자녀들은 피상속인의 채무가 자신은 물론 자신의 자녀에게도 승계되는
효과를 원천적으로 막을 목적으로 상속을 포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그럼에도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손자·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보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대와 의사에 반하고 사회 일반 법감정에도 반한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실무를 보더라도 판례를 변경해야 할 필요성이 드러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종래 판례에 따라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상속인이 되었더라도
그 이후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다시 적법하게 상속을 포기함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되는 실무례가 많이 발견됐다"며
"이는 무용한 절차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결과가 된 것으로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해석함으로써 법률관계를 간명하게 확정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이동원, 노태악 대법관은 종래 판례가 우리 법체계와 사회 일반의 통념을 벗어나지 않는
타당한 판결이므로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결정으로 상속에서 배우자의 지위 및 이에 관한 민법 제1043조의 해석론을 명확하게 정립하고,
상속채무를 승계하는 상속인들이 상속에 따른 법률관계를 상속인들 의사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으로
간명하고 신속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보증보험은 A 씨를 상대로 구상금 소송을 제기해 2011년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2015년 A 씨가 사망하자 A 씨의 아내는 상속한정승인을 하고 자녀들은 모두 상속포기를 했다.
상속한정승인이란 상속인이 피상속인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의 한도 내에서 물려받은 빚을 갚겠다는
조건하에 상속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보증보험은 확정판결을 받은 A 씨의 채무가 A 씨의 손자녀들과 A 씨의 아내에게 공동상속 됐다는
이유로 2020년에 해당 확정판결에 대해 승계집행문 부여신청을 해 승계집행문을 부여받았다.
이에 A 씨 손자녀들은 승계집행문 부여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대법원에 특별항고했다.
승계집행문은 판결에 표시된 채권자의 승계인을 위해 또는 채무자의 승계인에 대해 강제 집행을 하는 경우에
부여되는 집행문을 뜻한다.
박수연 기자 sypark@lawtimes.co.kr